피시킨 교수는 “공론조사의 고안자로서 한국 정부가 현재 변형해 수행하는 공론조사 기법을 평가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나는 공론조사라는 용어에 관한 상표권(trademark)을 가지고 있을 뿐 한국이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 프로젝트에 대해서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공론조사를 수행하기 위한 노력들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관한 기준표(criteria)를 정리해 (책으로) 출판해왔고, 공론조사가 만약 적절히 설계된다면, 이 모든 표준을 충족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아마도 한국 정부는 스스로의 방법을 개발했을 것이고, 그 방법은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공론조사가 적절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노력의 질(the quality of the effort)’에 달렸다”면서 성공적인 공론조사를 위한 10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8/2017081801803.html
국내 전문가도 “피시킨 따라야”
특히 국내에는 공론조사 경험도 일천하고 이렇다 할 권위자도 드물다. 공론조사의 고안자인 피시킨 교수는 1991년부터 4권의 저서를 통해 공론조사와 관련된 아이디어와 방법론을 소개하고 강화해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피시킨 교수의 저서는 ‘민주주의와 공론조사’를 제외하면 국내에 번역된 책이 없다. 피시킨 교수는 ‘민주주의와 공론조사’ 개정판 서문에서 “이 책을 쓸 당시 공론조사는 아이디어 수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피시킨 교수가 공론조사의 실행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책은 2009년 출판된 ‘When the people speak’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직까지 국내 번역본이 없는 상황이다. 관련 국내 연구도 미흡한 수준이다. 국내에 공론조사와 관련한 학위 논문이 한 편도 없고, 조사연구학회와 정치학회 등 관련 주요 학회들의 학회지에 실린 연구 논문도 3편이 전부다. “공론조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원전 찬·반 양론에 부딪힌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택한 측면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탈원전은 기정사실화한 채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만을 공론조사에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한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8월 15일 한국일보 기고에서 “건설 중단만 의제로 삼으면 탈원전에 대한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자칫하면 탈원전 공론화위원회를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법적 근거도 부실하다. 피시킨 교수에 따르면, 그가 자문했던 몽골의 경우 개헌 관련 공론조사의 필요성과 절차를 명시한 실정법을 의회가 통과시킨 후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반면 우리는 공론조사의 절차와 형식을 규정한 법률이 없다. 법률을 발의하고 심의할 만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재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론조사에 부친 법적 근거는 공론화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규정한 지난 7월 17일 총리훈령이 전부다. 행정조직 내부에서의 법적 구속력은 있지만 대외적 구속력은 없다.
공론조사를 두고 흔히 제기되는 의문점은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의 정책 결정을 일반 시민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피시킨 교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공론조사에) 필수적인 작업이 올바르게 고안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당 문제가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규명한다면, 대중이 복잡하고 기술적인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람들은 순수하게 기술적으로만 선택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충하는 가치 중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판별해 정책의 기본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