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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부활에서 소수자 혐오까지…청와대 국민청원의 명과 암

1. 잊혀진 권리 ‘청원권’의 부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2017년 8월19일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국정 현안 관련’ 내용이면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청원을 올릴 수 있다. 게시 뒤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가 답한다.

 

반응은 뜨거웠다. 개설 한 달 만에 1만4천건의 청원이 올라왔고, 500일엔 청원 글이 47만여건에 달했다. 하루 1000건꼴인 셈이다. 2일 현재까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정부의 답변을 받은 청원은 모두 92건. ‘자유한국당 해산 요구’ 청원 등 6건이 기준을 충족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게시판 개설 시점부터 지난해 4월13일까지 올라온 국민청원 16만건을 전수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정치개혁(18%), 인권/성 평등(10%), 안전/환경(7.7%), 육아/교육(7.4%) 순으로 많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실제 법·제도의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불법 촬영물 유포 처벌을 강화한 ‘성폭력처벌특례법’을 비롯해 8년 만의 임신중절 실태조사 재개, 디지털 성범죄 수사 본격화 등이 그 사례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가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잊혀진 권리인 ‘청원권’을 부활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10년 전만 해도 조례 개정을 하려면 밖에 나가서 사람들 이름, 주소 등을 받아야 했다. 국회나 정부는 청원권을 보장한다고 말만 했지 실제로는 보장하는 게 거의 없었다”며 “이제는 에스엔에스(SNS) 로그인만 하면 누구든 국민청원에 참여할 수 있다. 국민들이 자기 의사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성배 국민대 교수(법학과) 역시 “지금까지 국가기관들은 청원에 대해 반드시 응답할 필요도, 원하는 대로 해줄 필요도 없었다. 이견을 검토했다는 간단한 통지만 이뤄졌기 때문에 아무도 청원을 하지 않았고 청원권이 유명무실해졌던 것”이라며 “이 잊혀진 권리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동의를 받으면, 여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청와대 게시판이 ‘공론장’이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재근 국장은 “시민들이 의견을 표출할 때 예전에는 댓글을 달거나 다음 아고라에 글을 썼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민청원에 집중되고 있고 사람들의 의견이 숫자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김성배 교수는 “국민청원에 글이 올라오면 국민이 한 번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버닝썬 사건도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나쁘게 보는 쪽에서는 여론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종의 여론 형성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대통령이 직접 국민하고 소통하는 창구이고, 국민들이 의견을 내면 사안에 따라 폭발적인 관심을 받다 보니 행정민원이나 정책 민원을 넘어 국민의 목소리를 담는 장이 됐다”면서도 “다만 그 여론이 청와대 게시판에 모아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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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친절한기자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계기로 돌아본 청와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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