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어떻게 월평공원을 지켜냈을까?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 인터뷰① 양흥모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월평공원은 대전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도시 숲’ 입니다. 2016년 대전시가 월평공원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대전시, 환경단체, 토지소유주, 대전시민 등이 복잡하게 얽혀 여러 갈등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8년 월평공원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공론화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월평공원공론화위원회는 지난달 21일 시민참여단은 “민간특례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 라는 결론을 대전시에 권고했습니다. 시민참여단 159명 중 60.4%의 반대로 내려진 결론이었습니다.
월평공원 공론화는 어떻게 진행되었고 시민들은 왜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 추진을 백지화시키는 결정을 내렸을까요? 시민들의 토론과 숙의를 통해 지켜진 월평공원 이야기, 그 현장에 있었던 양흥모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을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대전시민의 허파이자 유일한 도시숲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월평공원은 대전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도시 숲’으로 대전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허파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월평공원은 인근 하천인 갑천과 어우러져 반딧불이, 미호종개, 수리부엉이 등 800여종의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우리나라 도시 숲 중 그 가치도 매우 높은 곳입니다. 실제 2014년 산림청에서도 ‘아름다운 공존상’으로 지정하기도 했고, 2017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한국환경기자클럽이 공동수상한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 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월평공원이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일몰제’로 인해 2020년 7월 공원에서 해제될 상황에 놓이자 대전시는 민간특례사업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고 발표합니다. ‘일몰제’는 도시계획시설 결정일로부터 20년이 지나면 시설 지정 효력을 자동으로 잃게 하는 규정입니다. 즉 토지소유주가 공원 부지를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전시는 민간특례사업을 통한 개발 수입으로 월평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며 대규모 아파트 개발 계획을 마치 공원 보존 대책인 것 마냥 발표했습니다.
시민들에게 월평공원 특례사업 찬반을 묻자.
초기 대전시와 시민사회의 갈등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대전시는 통상 1-2명에 그치는 도시공원위원회 당연직 위원을 5명이나 위촉해 비민주적으로 찬성비율을 높여 월평공원 특례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맞서 시민사회가 1인 시위와 겨울철 천막농성까지 하면서 월평공원은 대전시의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후 권선택 대전시장이 정치자금법위반으로 낙마하고 촛불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7년 연말에 민간협의체를 구성을 통해 ‘월평공원공론화’에 합의합니다. 그러나 초기 공론화는 운영부터 삐거덕 거렸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전시가 시민숙의단 선정을 유선전화로 모집하겠다고 고집하면서 발생하게 된 시민숙의단의 대표성 문제였습니다. 실제 1차 숙의 워크숍을 앞두고 유선전화의 한계와 짧은 모집기간으로 시민숙의단을 다 모으기 힘들어지자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친구나 지인들을 데리고 오라고 카카오톡을 보내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당연히 시민숙의단의 미션과 관계없이 시민숙의단을 마구잡이로 모집하면 공론화의 신뢰성과 대표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대전시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1차 워크숍 이후 다시 공론장을 설계하게 됩니다. 1차 워크숍까지 참여했던 시민숙의단에 추가로 새로운 시민들을 무선전화로 모으고, 2회에 걸친 숙의 워크숍을 다시 진행하게 됩니다. 또 공론화 과정에 월평공원 현장답사와 시민 상호토론 등을 포함시켜 제대로 된 토론과 숙의를 할 수 있는 공론장을 다시 설계하게 됩니다. 그렇게 약 220명의 시민숙의단을 선발했고 159명의 시민이 참가하면서 월평공원 공론화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월평공원 관통도로 반대를 외친 어린이
월평공원 공론화 1차 숙의 워크숍 첫 번째 순서는 총론 발제였습니다. 제가 발제자로 나와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을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제기와 월평공원 보존의 필요성을 발제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월평공원 현장답사를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현장답사는 월평공원 보존과 개발을 둘러싼 입장을 가진 양측이 각각 발언 기회와 답사 코스를 정해서 진행했습니다.
2차 숙의워크숍은 재정문제, 대안과 해결책, 마무리 발제와 상호토론, 최종투표로 진행했습니다. 특히 2차 워크숍 마지막 발제 때는 20대 청년이 나와 자신은 10여 년 전 월평공원 관통도로 반대 시위에 참가했던 어린이였고 그 때는 결국 도로가 생겼지만 이번만큼은 월평공원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때 시민숙의단 사이에서 작은 감탄이 나왔습니다. 사실 입장을 절대 바꾸지 않는 시민숙의단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부동층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데 20대 청년의 마지막 발제는 큰 울림을 준 듯합니다.
무엇보다 상호토론을 통해 시민들은 서로간의 의견을 공유하였습니다. 시민들이 가장 열심히 참여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시민들이 월평공원을 두고 이렇게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은 지역사회에도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워크숍이 끝나고 마지막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시민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걱정과 우려가 무척 컸습니다. ‘우리가 지면 시민단체들은 문닫아야한다.’ 하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시민숙의단의 최종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가 진행되고 검증단의 결과에 대한 검증이 있고 몇일 후 공론화위가 공론화 결과를 발표할 때 까지 정말 무서운 침묵의 시간을 보냈죠.
공론화, 그 참여민주주의의 현장
“이제 우리 동네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정책이나 행정을 꼼꼼히 봐야겠어요.”
월평공원 공론화에 참여했던 한 시민의 말입니다. 이번 대전 월평공원 공론화는 공원일몰제 문제를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 내린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월평공원 보존과 개발을 넘어 새로운 참여와 숙의민주주의를 경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마무리 즈음, 양 처장은 “무작위 시민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션을 진지하게 수행하고 토론에 임했습니다. 시민들은 겨울철 현장답사를 위해 산에 올라가서도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냈다.” 며 대전 시민들이 1차, 2차에 걸친 워크숍에서 보여준 뜨거운 참여와 열정에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이어 “이런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민들이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공론화를 통해서 일종의 지방자치 경험을 하는 한 셈이죠. 과거 관료들에게 위임되었던 결정을 시민들이 하게 되면서 공론화를 교육받고 숙의민주주의와 거버넌스에 상징과도 같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공론화의 의미와 시사점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