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행중인 여러 공론화 위원회에 대한 이관후님의 논평인데 아래 구절이 와닿네요.

공론화위원회가 직접·참여민주주의의 한 유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세계적으로는 물론 한국에서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론화위원회가 ‘대표제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것이 직접민주주의라면 훨씬 많은 수의 시민들이 오랜 시간 동안 참여해야 하고, 이것이 참여민주주의라면 공론화위원회가 진행되는 동안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단체들, 다수의 시민들이 왁자지껄하게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공론화위원회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침묵이 강요되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폐쇄적인 대표제 민주주의였다.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858602.html

[세상 읽기] 그것은 정말 ‘공론’이었을까? / 이관후
이관후 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 신고리 5·6호기 계속 건설 여부와 대학입시제도 개선에 대한 결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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